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사업이 있습니다. 명절 선물세트, 겨울 의류, 여름 레저용품. 이런 사업의 1년은 두 개의 계절로 나뉩니다.
날아다니는 계절과, 버티는 계절.
성수기에는 매출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비수기가 오면 회사는 생존 모드에 들어갑니다. 고정비를 줄이고, 광고비 같은 변동비도 줄이고, 통장 잔고를 바닥까지 긁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옵니다. 다시 대목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대표님들이 잔인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대목 장사를 하려면 재고를 미리 사야 하는데, 비수기를 버티느라 재고 살 돈이 없습니다.
이대로면 대목도 놓치고, 성장도 놓칩니다.
왜 하필 '대목 직전'이 가장 위험할까?
시즌 사업의 현금흐름에는 구조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 | 시점 | 현금 흐름 |
① 사입 | 대목 2~3개월 전 | 재고·원재료 대금이 먼저 나간다 |
② 판매 | 대목 | 매출이 발생한다 |
③ 회수 | 대목~직후 | 판매대금이 통장에 들어온다 |
돈이 들어오는 것은 ③인데,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①입니다. 그리고 ①의 시점은 하필, 비수기를 막 버텨내 잔고가 1년 중 가장 얇아진 순간입니다.
즉, 시즌 사업은 '연중 현금이 가장 없는 시점에, 연중 가장 큰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타고났습니다. 이건 회사가 장사를 못해서가 아닙니다. 계절이 만든 구조입니다.
실제 사례 두 개를 보겠습니다. 둘 다 고위드가 실제로 심사한 회사들입니다.
사례 1. 명절이 대목인 식품 커머스 A사 — 흑자 6년, 잔고는 0원
A사는 설(1~2월)과 추석(9~10월)이 1년 농사의 대부분인 식품 커머스입니다. 실적은 훌륭합니다. 6년 연속 영업흑자, 영업이익률 10%대. 직전 설 시즌 두 달 매출은 23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6월 말 통장 잔고는 0.4억 원, 장중 최저 잔고는 0원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설에 번 현금이 봄을 지나며 소진되고, 추석 대목을 준비해야 하는 여름이 오면 잔고가 1년 중 바닥을 치는 사이클이 매년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시즌 | 사입기 (잔고 저점) | 시즌 매출 입금 |
설 | 1월 매입 집중 · 장중 잔고 0원 | 설 시즌 약 9~23억 |
추석 | 9월 매입 집중 · 장중 잔고 0.09억 | 추석 시즌 약 14억 |
여기에 결정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매입처의 선급금 요구입니다. A사의 추석 총 발주는 약 14억 원인데, 제조사가 발주 시점에 30%를 선급금으로 요구합니다. 즉 추석 매출이 들어오기 석 달 전인 여름에, 잔고가 0원인 상태에서 수억 원을 먼저 내야 하는 겁니다.
6년 연속 흑자 회사가, 매년 여름마다 '장사 잘 되는데 발주를 못 하는' 위기 앞에 서는 이유입니다.
사례 2. 겨울이 대목인 패션 브랜드 B사 — 매출 254% 성장, 통장은 비어있다
B사는 자사몰에서 직접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입니다. 매출이 1년 만에 12억 → 44억 원으로 +254% 성장했고, 대목인 겨울 시즌의 12월 한 달은 영업이익률이 19.7%까지 올라갑니다. 전형적인 '겨울에 1년을 버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월말 잔고는 0.11억 원. 최근 2년간 월말 잔고가 1억 원을 밑돈 달이 74%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브랜드는 비수기에도 쉬지 않습니다. 매출이 없는 계절에도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광고비가 계속 나갑니다. B사의 광고선전비는 연 매출의 37.5% — 매출총이익의 상당분을 광고가 흡수하는 구조입니다. 광고는 매출보다 항상 먼저 나가는 돈입니다.
둘째, 번 돈이 재고와 외상값에 묶입니다. B사는 회계상 흑자인데, 최근 1년 통장의 영업현금흐름은 마이너스 9.6억 원이었습니다. 적자여서가 아닙니다. 매출채권이 4.8억, 재고가 5.3억 늘어나며 운전자본에 약 10억 원이 흡수됐기 때문입니다.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이익이 통장이 아니라 창고에 쌓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1년 농사인 겨울 FW 신상품 생산 시즌이 다가옵니다. 생산은 8월에 시작해야 하는데, 판매대금은 11월에야 들어옵니다.
생존도 힘들어서 서러운데, 기회까지 놓친다?
두 회사의 공통점을 보셨을 겁니다.
· 사업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A사는 6년 흑자, B사는 254% 성장입니다.
· 돈을 못 버는 게 아닙니다. 대목이 오면 매출은 확실하게 들어옵니다.
· 문제는 딱 하나, 대목보다 2~3개월 먼저 나가야 하는 돈입니다.
비수기 내내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텨낸 회사가, 정작 봄이 왔을 때 씨앗 살 돈이 없어서 파종을 못 하는 상황. 생존도 힘들어서 서러운데 기회까지 놓친다면, 그건 너무 서럽지 않습니까?
이때 대표님들이 흔히 택하는 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발주를 줄이거나(대목 축소), 지분을 내주거나(비싼 돈), 개인 자금을 밀어넣거나(가장 위험한 돈). 셋 다 아깝습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회사의 체력이 아니라 계절이 만든 2~3개월의 시간차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차 문제는 시간차 금융으로 — 성장금융
시간차에서 온 문제는 시간차를 메우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 정석입니다.
대목 전에 사입 자금을 조달하고, 성수기에 번 돈으로 갚는 것. 금융에서는 이를 '자기청산형(self-liquidating)' 구조라고 부릅니다. 거래가 완결되면 빚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금융에서 가장 오래되고 검증된 방식 중 하나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역금융입니다. 수입업자가 원자재를 사올 돈이 없으면 은행이 대금을 먼저 치러주고, 수입업자는 그 원자재를 가공·판매한 대금으로 은행에 갚습니다. 빌린 돈이 물건이 되고 → 물건이 팔려 현금이 되고 → 그 현금이 대출을 갚는 것. 자금의 용도와 상환 재원이 처음부터 하나의 거래로 묶여 있어서, 대출 만기와 현금이 들어오는 시점이 자연스럽게 일치합니다.
은행이 수백 년 동안 무역상에게 기꺼이 돈을 빌려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차주의 다른 재산이나 담보를 처분해서 받는 돈이 아니라, 상환 재원이 거래 안에 눈에 보이게 들어 있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즌 사업의 대목 사입 자금이 정확히 이 구조입니다.
무역상의 '수입 → 판매 → 상환' 사이클에서 수입을 사입으로, 판매를 대목 판매로 바꾸면 그대로입니다.
무역금융 | 시즌 사업의 대목 금융 |
원자재 수입 대금을 은행이 선지급 | 대목 재고 사입 자금을 미리 조달 |
가공·판매 대금으로 상환 | 성수기 판매대금으로 상환 |
거래 완결 = 대출 소멸 | 대목 종료 = 대출 소멸 |
실제로 두 회사가 그렇게 했습니다.
A사 (명절 식품) | B사 (겨울 패션) | |
실행 시점 | 여름 (추석 사입기, 잔고 저점) | 8월 (FW 생산 시작) |
자금 용도 | 추석 발주 선급금 | 겨울 신상품 생산 |
상환 시점 | 9~11월, 추석 판매대금으로 분할상환 | 11~1월, 겨울 성수기 판매대금으로 분할상환 |
구조 | 대목 매출이 곧 상환 재원 | 상환 개시월 = 매출 피크월 |
포인트는 상환 스케줄입니다. 아무 때나 갚는 게 아니라, 매출이 가장 큰 달에 상환이 시작되도록 설계합니다. B사의 경우 상환이 시작되는 3개월간 실제 들어온 판매대금은 12.9억 원 — 갚아야 할 돈의 6배가 넘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장 여유 있는 계절에 갚는 돈'이 됩니다.
물론 이 구조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대목 판매가 예정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무역금융에서도 최종 판매가 무너지면 자동 상환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구조의 핵심은 '얼마나 좋은 계획인가'가 아니라 '그 판매가 실제로 반복돼 왔는가'를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고위드의 성장금융이 바로 그 확인을 합니다. 재무제표의 겉모습이나 회사의 계획서가 아니라 통장의 실제 현금흐름 — 과거 시즌마다 반복된 대목 매출 실적, 사입과 회수의 시간차, 시즌 사이클의 실측 데이터 — 를 보고, 회사의 계절에 맞춰 실행과 상환을 설계합니다. A사의 심사에서 우리가 본 것은 '추석에 잘 팔릴 것'이라는 전망이 아니라, 지난 설과 추석마다 실제로 통장에 찍힌 시즌 매출이 사입 자금을 매번 덮고도 남았다는 반복된 기록이었습니다. 잔고가 0원이어도 됩니다. 6년 흑자의 A사도, 254% 성장의 B사도, 잔고가 가장 얇은 순간에 자금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잔고가 아니라 다가올 대목의 회수력이었으니까요.
대목을 준비하는 대표님께
시즌 사업 대표님이라면, 대목 2~3개월 전에 이 세 가지를 점검해 보세요.
1. 이번 대목의 총 사입 자금은 얼마인가? (선급금 조건 포함)
2. 사입 시점의 예상 잔고로 감당이 되는가? (비수기 소진을 반영해서)
3. 부족하다면, 대목 판매대금으로 갚는 구조의 조달을 지금 시작했는가? (조달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비수기를 버텨낸 것만으로 대표님은 이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이제 봄이 왔다면, 얼어있는 지갑 때문에 대목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겨울을 버틴 회사가 봄에 씨를 뿌릴 수 있도록 — 그게 고위드가 성장금융을 만든 이유입니다.